
백범일지 김구의 자서전 & 유서 리뷰
백범일지는 상권과 하원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먼저 상권에는 왜놈들한테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자식들한테 유서을 남겨야 되겠다고 생각에 우리 집안 내력부터 시작해서 나 김구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여러 가지 옥고를 치른 뒤에 임시정부가 생긴 이야기 상해로 망명하기 직전까지 이야기를 김구 선생님 인생의 전반부를 다룬 것이 상권이 되겠습니다.
책머리 처음을 보면 사랑하는 두 아들들에게 어떤 얘기를 하느냐
1. 상 권
김구 선생님은 일단 우리 집안 내력부터 시작 합니다 두 아들에게 우리 집안은 왕족이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입니다. 경순왕의 자손인데 왕족 귀족으로 살다가 조선시대에 효종이 병자호란 복수를 위해 북벌운동을 하는데 그때 김자점이라는 대신이 이걸 청나라에 밀고를 하므로. 조선이 북벌을 한다고 이게 망고역적이 되는 김자점의 후손이에요. 김구 선생님 집안이 그래가지고 그때 우리 집안이 망고역적으로 몰려서 풍비박산이 난다 그래서 어디 오갈 데가 없어서 황해도 해주의 터를 잡게 되었다고 이렇게 시작이 됩니다.
온 집 안이황해도 해주읍 백운방 텃골
팔봉산야가봉 밑까지 숨어 들어와 살게 되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래서 정말 정말 가난했어요. 얼마나 가난했냐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죽기를 바라셨다 그럴 정도로 집안이 굉장히 가난했다
우리 집안이 극히 빈곤한데 아이를 얻으니
어머님은 항상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 한탄하셨다 한다
-백범일지 중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구 선생은 무럭무럭 성장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4세, 5세쯤 되면서 이사를 갑니다 삼거리라는 곳으로 이제 이사를 가는데 근처에 여기서 김구 선생님의 어릴 적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일화가 나오는데 천하의 개구쟁이 중에 개구쟁이입니다
동네에 다른 집에 놀러 갔는데 동네 아이들이 해주 촌놈이 왔다 촌놈 때려주자 그래서 김구를 잡아서 집단 구타를 하는 것입니다
김구는 참지 못하고 집으로 가서 네 이놈들 복수한다고 부엌칼을 들고 나옸어요 5살짜리 꼬마가 부엌칼을 들고 남의 집 울타리를 뜯고 들어가다가 이 집 처녀들한테 걸려서 칼을 뺏기고 거기서 또 죽도록 맞습니다 그리고 하루는 아버지가 몰래 어디서 돈을 거금 갖고 와서 감추는 걸 보고 아버지 나갔을 때 아무도 없을 때 돈을 꺼내갖고 엽전꾸러미를 차고 가는 거예요. 떡 먹을라고 그게 엽전 20 냥인데 그 돈이면 이게 얼마나 거금이냐면 노비 5명을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고 합니다
거의 전 재산인데 떡 사 먹겠다고 꼬마아이가 가다가 종조부 할아버지한테 붙잡혀요 어디 가니 창암이 어디 가니 떡 먹으러 가는데요. 이리 와 데려와 가지고 아버지한테 엽전꾸러미를 줍니다 여기서 아버지가 완전히 요즘 말로 뚜껑 열린 거죠. 아버지는 진짜 무섭거든요. 농민인데 동네 양반들을 그렇게 패고 다녀던 아버지
아버지는 대신 강한 자에게는 강하나 약한 농민이나 이런 사람들은 크게 보살피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모습을 보시던 아버지가 이놈이 이게 오냐오냐 했더니, 버르장머리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너 오늘 나한테 혼 좀 나라 그러면서 그 어린 김구를 줄에 꽁꽁 묶어가지고 몽둥이로 패기 시작합니다.
아버님은 한마디 말씀도 없이 뺄랫줄로나를 꽁꽁 동여 들보에 달아메고 매질하셨다
말려 줄 사람도 없고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딱 죽는구나 아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어린 김구는 이때 구세주를 만납니다. 할아버지가 오시는데 아버지의 친할아버지가 아니라 학렬상 할아버지일 뿐 아버지 하고 동갑인
그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뭐 하는 건가 지금 자네 아이를 이렇게 때리면 돼 하면서 할아버지가 풀어줘 창암이 괜찮아
할아버지 하며 우니까 이 사람이 그러면서 매를 들고 아버지를 때리기 시작합니다.
어린 김구는 그 할아버지를 말리지 않고 그걸 지켜보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버님이 매 맞으시는것이 퍽 시원하고 고소하였다
-백범일지 중에서-
이제 나이가 점점 들어왔고 열두 살이 됩니다. 이제 열두 살이 되면서 이제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 오는데 그 일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종친 어른 중에 한 분이 딸을 시집보내고 사돈어른을 만나러 가는데 우리의 사돈 만나러 갈 때 잘 차려 입고 가잖아요. 갓을 쓰고 나간 거예요. 평민인데 밤에 나가다가 동네 양반들한테 붙잡혀 가지고 엄청나게 구타를 당하며 갓을 다 갈가리 찢어버린고 매질을 당했나는 그 소리를 듣고 어린 김창암이 왜 우리는 갓을 쓰면 안 되지 그러면서 아버지랑 대화를 나누는데
그 사람들은 어찌하여 양반이 되었고
우리 집안은 어찌하여 상놈이 되었습니까?
그들의 선조는 우리 집안보다 못하나 지금
그쪽 집안에 진사가 셋이나 있지 않느냐 진사요 진사는 어찌하면 되는 건가요?
학문을 연마해서 큰 선비가 되면 과거 시험을 볼 수 있다.
과거 시험을 보면 진사도 되고 관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알겠어요. 아버지 저도 서당 보내주세요
아버님은 문중과 인근의 아이들을 몇 명 모아 서당을 새로 하나 만드셨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주기로 하고 이생원이라는 선생님을 모셔왔다
선생님이 오시는 날
나는 너무 좋아서 머리 빗고 새 옷 입고 마중 나갔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래서 선생님이 오셔서 공부를 하는데 김구 선생은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목표가 분명하니까 그래서 선생님한테 공부 배우러 고개 하나 고개 두 개 넘을 때마다 가르쳐 주신 글을 암성하면서 맹자가 말하시기를 공자가 말씀하시길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셨다 그러니 당연히 반에서 항상 일 등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아침마다 고개를 넘어 집과 서당을 오가며 끊임없이 글을 외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런데 문제는 뭐냐 김구가 항상 일 등을 하는 게 문제였어요. 다른 아이들과 부모들이 시기를 한 거지요. 그래서 선생님이 해고를 당하는데 해고당한 이유가 뭐냐 선생이 밥을 너무 많이 먹는다.라는 말도 안 되는 꼬투리로
김구선생님이 처음 만난 생원과의 이별이었어요.
어느 날 내가 아침도 먹기전에 그 선생님이 집에 와서 작별을 고하셨다
나는 정신이 아득하여 선생님의 품에 매달려 목 놓아 울었다
선생님도 눈물이 비 오듯 하였다
작별하고 나서 나는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하였다
-백범일지 중에서-
아버지 입장에선 자식이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 하니까 공부를 좀 시켜야겠는데 어쩌나 그러는데 다행히 이웃 마을에 평민 출신의 선비인데 글을 잘해 이 사람이 아이들을 불러놓고 가르치는데 잘 가르친다라는 소문에. 거기에 무료로 공부를 하고요.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과거 시험장으로 갑니다. 17살때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과거 시험장이 아니라 여기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드디어 과거 보는 날, 정해진 시간에 과거장의 문을 열었다
자리를 먼저 잡으려고 힘 있는 자를 앞세워 떼 지어 들어가는 광경,
늙은 선비들이 합격을 애걸하는 모습,
과거 답안지를 한 아름도적질해 갔다는 이야기,
글 모르는 부자가 몇천 냥씩주고 글을 사서 진사가 되었자는 이야기…
도대체 과거가 무슨 필요가 있으며 무슨 가치가 있는가?
불쾌하고 비관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래서 돌아와 아버지한테 과거 안 볼래요. 준비한 과거를 하루아침에 포기하였다 아버지가 그런 과거 보지 마라 너 풍수지리 공부하고 관상가가 돼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때부터 관상 공부를 시작을 합니다. 책과 거울을 보고 또 보고 이렇게 공부하여 그렇게 3개월을 공부하다가 엄청난 깨달음과 충격에 빠집니다. 놀라시죠. 엄청 놀라요. 내 관상이 너무 안 좋아
과거도 포기하고 3개월간 관상공부를 했는데 이 얼굴에 부격 귀격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고 빈 격 흉격 천격이 가득한 거예요. 나쁜 게 다 있는 거야. 이 얼굴에
나는 두문불출하고 석 달 동안 내 얼굴을 면밀히 관찰하였다
그런데 내 얼굴에는 어느 한 군데도 귀하고 부유하고 좋은 상은 없고
천하고 가난하고 흉한 상밖에 없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이 상황에서 다행히 대답을 그 책에서 찾습니다 책에 어떤 기절이 있냐 사람 관상이 좋은 것은 몸이 좋은 것만 못하고 몸이 좋은 것은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다 그러는 거예요. 사실 김구 선생님 되게 무섭게 생겼거든요.
상해에서 활동하던 시절인데요. 그때 경무국장이었거든요. 원래 얼굴이 저랬는데 세상이 흘러가면서 우리가 기억하는 김구는

그래 내가 이제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근데 마침 이때 소문이 들려옵니다. 신흥 종교 동학에 접주님이 계신데, 도술을 부린데요 하늘을 달리는 것이 두 발이 녹아진다 하더라요.
그래서 도술사를 찾아가 봐야지 하면서 찾아갑니다.
내 나이 열여덟 되던 계사년 정초 나는 오 씨댁을 방문하였다.
젊은 청년이 나와 맞이해 주었다
상투를 짜고 관을 쓴 걸 보니 분명 양반이었다.
그런데 내가 절을 하자 그 사람도 공손히 맞절을 하고
자신이 동학 도인이기 때문에 빈부귀천으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만 들어도 별별세계가 온 것 같았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때 감동받고 바로 입교를 합니다 그리고 이때 이제 김창암에서 김창수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거죠.
이제 입교를 했는데 이 평등사상을 더 알리고 싶은 거예요. 그래갖고 몇 개월 만에 몇백 명을 전도해서 전도왕이 돼요. 그럼 전도왕이 되면 이 동학은 포접제라 그래서 여러 포주들이 있고 포주 밑에 접주들이 있는데 나이 18살의 접주가 돼 한 지역의 장이 됩니다. 그래서 별명이 아기접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마침 그때 동학농민 운동이 벌어지게 됩니다.
황해도 동학군의 최고 회의에세는 나를 선봉으로 임명하였다
그 이유는 내가 평소에 병법을 연구하였고
나의 접이 산 포수로 잘 무장되어 있었기때문이다.
부대를 편성하니 여느 다른 접보다 어리 접의 무력이 우세하였다
-백범일지 중에서-
이름이 나기 시작 합니다. 아기접주가 날아다닌다 이렇게 그런데 그때 한 통의 편지가 와 봤더니, 안진사 안태운이라는 사람한테 편지가 와요
.
그러던 어느 날 밤, 안태훈 진사로부터 밀사가 왔다
-백범일지 중에서-
안태운이 누구냐 동학 토벌대 대장이고 이 사람은 동학군이 가장 두려워하는 장군 중에 장군이었습니다. 이제 안태운이라는 사람이 편지를 보내서 뭐라 그랬냐 하면 내 자네 얘긴 잘 들어 나이는 어리지만 뛰어나다고 하더군
비밀리에 나를 조사하고, 나의 인품을 아끼어 밀사를 보낸 것이었다
“어느 한쪽이 불행에 빠지면 서로 돕는돕는다 “는밀약을 세웠다
-백범일지 중에서-
내가 자네를 토벌하다가 자네가 목숨을 잃으면 훗날 인재를 하나 잃을 수 있으니 우리 서로 화친을 맺으세나 그래서 암묵적으로 서로 회맹을 맺어요.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그리고 나서 그런데 동학의 내분이 일어나서 그래갖고 완전히 이제 정부군에 쫓겨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안진사를 찾아갑니다 안진사는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나는 밀약을 맺은 바 있는 안진사가 사는 청계동으로 갔다
안진사는 본채에서 우리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그는 부하에게 나의 부모님을 모셔 오라 명령하고,
인근에 가옥 한 채를 매입해 주었다
이리하여 그날 바로 청계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나이 스무 살,을미년 2월이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안진사가 본인의 자식들을 소개하는데 공근, 정근, 중근이라 하였다 그래서 안중근을 여기서 처음 만납니다.
안진사의 큰아들이 안중근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김구 선생님이 바라본 안중근의 어린 시절은
진사의 맏아들 안중근은 열여섯 살의 상투를 틀었고, 날마다 사냥을 다녔다
중근은 영기가 넘치고 여러 군인 중에서 사격술이 제일로,
나는 새 달리는 짐승을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재주가 있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이제 안중근을 만나서 함께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그러다가 이제 중국 떠나한 일 년 정도 여행을 합니다. 그래서 여행하는 와중에 뭐 죽을 고비도 넘기고 의병에도 참여하고 이제 다양한 일들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때가 어느 때였냐면 1895년 10월8일에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한테 시해당하고 3.1 운동 뜨거운 불길갔이 일어나게 되고 직후에 상해에서 임시정부가 만들어진다는 말을 듣고
기미년(1919년, 44세)
내가 탄 배는 무사히 생해 포동 부두에 닻을 내렸다
상해에 모여든 청년들을 중심으로 정부조직이 필요하다는목소리가 높아져
각 곳에서 대표를 선출하고 임시의정원을 조직하여
임시정부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백범일지 중에서-
2. 하 권
상해에 왔는데 상해에 와서 제일 먼저 이제 누구를 만나느냐 바로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안창호 선생님한테 뭐라고 말씀드리냐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고 싶습니다”
벼슬을 시켜주지 않는 반감으로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여
도산은 의아해하고 염려하는 빛을 보았다
-백범일지 중에서-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때 안창호 선생님이 뭐라고 생각을 하시냐면 이분이 지금 내가 특별한 어떤 관직이나 벼슬을 주지 않아서 서운하셔서 나한테 일종의 시위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한 거였다. 김구 선생이 아니다. 진짜다 그냥 창문 닦고 마당 쓸고 딱 그 일 하는 게 내 소원인데 그것 좀 시켜주세요. 그러니까 안창호 선생님이 명함을 만들어 경무국장 지금으로 따지면 경찰총장 국정원장 정도를 준거죠. 그래서 경무국장 하시면서 그때는 정말 무서우셨어요. 그래서 밀정이 있으면 과감하게 가서 처단하시고 완벽한 경무국장의 역할을 하고 계셨죠
임시정부가 수립된 원년에는
나라 안팎이 일치단결하여 민족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세계정세가복잡해지면서
상해의 정세도 사상 대립으로 함께 망한 꼴이 되었다
나는 근 10년 임시정부를 지키고 있지만
그야말로 해지는 외딴 성에
슬픈 깃발을 날리듯 암담한 시기였다
-백범일지 중에서-
힘도 없는데 할 수 있는 건 의거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마침 그때 임시정부가 잘 되리라고 했는지 바로 그분이 임시정부를 찾아옵니다. 이봉창 이었습니다. 자기가 무슨 뭐 일본에서 왔는데 일왕을 내가 격살하려고 한다. 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말도 못 하고 좀 약간 이상한 거죠. 그래서 술을 먹여본 거예요. 속에 있는 말을 하는데 이봉창이 그러는 겁니다.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왜 일본 천황 못 죽입니까?” 이 이야기를 듣고 보통 사람 아닌데 그래서 따로 불러다가
그날 저녁, 있가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가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나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영원한 즐거움을 얻기 위해
독립운동에 몸을 던지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
그의 인생관을 들으니 감동으로 눈물이 벅차올랐다
-백범일지 중에서-
이 말을 듣고 김구 선생이 폭탄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그걸 받고 이봉창을 만나서 돈과 함께 폭탄을 주는데 활짝 웃으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이렇게 죽고자 하는 분의 환하게 웃으면서 헉 지금의 저 라면 상상도 못 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이봉창의사 선서문 중에서-
김구 선생님이 한 젊은이가 이제 떠나가는구나 라는 생각에 표정이 어두워졌는데 의사께서 내 얼굴에 슬픈 기색이 있었던지 이 씨가오히려 나를 위로하였다
“저는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니…”
-백범일지 중에서-
그러면서 얼굴 피세요. 그러면서 이제 둘이 작별을 하는데 저는 문장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차에 올라앉은 이봉창의 머리 숙여마지막 경례를 하자,
경적 소리 한번 내고 무정한 차는 내달렸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러고 나서 이봉창은 도교에서 일왕한테 폭탄을 던졌는데 문제는 이것이 터지는 위력이 없죠 그래서 일왕한테 어떤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겁니다 하지만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이봉창 의사에 의거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헌 윤봉길의사 입니다 교사 출신이셨고 김구 선생님하고 원래 알았는데 처음 봤을 때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로 소개를 받습니다. 그래서 생활 노동을 하는 사람이구나라고 알았데요 1년간을 김구 선생님한테도 얘기를 하고 그냥 노동만 한 거예요. 그런데 생활 노동에 야채장수인 줄만 알았던 윤봉길 젊은이가 이봉창 이거에 찾아오고

그러던 어느 날윤봉길 군이 나를 찾아왔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보니 그는 몸을 바쳐 큰 뜻을 이룰 의로운 대장부였다
나는 감복하여 말하였다
4월 29일홍구공원에서 팽생의 큰 목적을 달성해 봄이 어떻겠소?
윤군은 쾌히 승낙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백범일지 중에서-
때 마침 공고가 붙습니다. 참석하는 자는 물병 하나 도시락 하나 일장기 하나를 지참하고 매표소로 오시면 됩니다라고 붙은 거예요.
이걸 두 분이 보자마자 폭탄 제조를 시작합니다 시간은 단 3일 물병 안에 도시락 안에 폭탄을 심어줄 수 있느냐 이렇게 된 거죠. 그리고 이제 그동안 윤봉길 의사는 야채 장수로 가정하여 끊임없이 홍구공원의 지형지물을 살피고 그때 이제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동포에게 드림 이런 유서를 남기고 운명의 그날이 왔습니다. 마지막 이제 떠나는 날이니까. 양복 한 벌 딱 해 입으시고 그리고 아침 7시에 식사를 합니다. 정말 유명한 명장면이 그때 나오는 거죠.

윤군은 자기 시계를 꺼내내시계와 바꾸자고 하였다
“제 시계는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의 시계는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 밖에 더 소용이 없습니다.”
-백범일지 중에서-
그래서 두 분이 시계를 바꿔 차시고 좀 더 이제 세부적인 내용이 또 백범일지에 나옵니다. 책을 읽어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나는 목멘소리로 마지막 작별의 말을 건네었다
“후일 지하에서 다시 만납시다”
-백범일지 중에서-

오후 두세 시경신문 호외가 터져 나왔다
홍구공원 일본인의 경축대에 대량의 폭탄 폭발
민단장 가와바다 즉사
시리카와 대장, 시게미츠 대사, 우에다 중장 등
문무 대관 모두 중상
벌써부터 우리는 윤의사가 희생한 공을 톡톡히받기 시작하였다
-백범일지 중에서-
이것 때문에 완전히 바닥까지 떨어져서 땅속까지 파고 들어갔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기사 회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임시정부가 그래서 그때 장개석을 만나고 지원하겠습니다. 약속을 나누고
동포들도 사건 이후로 이게 뭔가 있구나 실체가 있는 독립운동이구나 하면서 그때부터 재정적으로도 훨씬 좋아졌습니다.
1941년에 우리의 꿈을 펼칠 기회가 옵니다. 일본이 이제 미국을 공격을 한 거예요. 진주만을 이때 김구 선생님은 대일, 대독, 선전포고을 하고 연합군과 손을 잡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자 지금부터 서서히 이제 기운이 좋아집니다. 42년에 약산 김원봉이 임시정부로 들어와요. 의열단 그러다 이제 1945년이 되면서 드디어 우리도 이제 손에 총을 잡습니다. 그게 뭐냐 미국이 도와줘요 OSS 에서에서 특별히 특공대를 뽑습니다. 그래서 한국광복군 중에서도 이제 특급 전사들을 따로 뽑아가지고. 정진군이라는 특수부대를 만들어요. 그래서 열심히 군사 훈련을 해서 잠수함을 타고 1945년 9월쯤에 우리나라에 잠입해서 일본을 쓸어버리자라는 훈련을 받다가 1945년 8월 두 개의 핵폭탄이 일본의 투하가 가져온 갑작스런 일제의 항복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니는 일이었다
수년간 애써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까지 들인 정성이 아깝고 다가올 일이 걱정되었다
-백범일지 중에서-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같은 엄청난 충격을 받으신 거죠. 우리가 지금까지 이렇게 연합군과 활동을 했지만,
그건 간접적인 활동 내 나라 내 땅에서 태극 깃발 걷고 직접적인 한 일이 없으니 우리의 입김이 약해질 수밖에 없고 이러다가 우리나라가 강대국에 의해서 혹시 동강 나는 건 아니겠지 김구선생님의 슬픈 예감이 이게 맞아떨어진 거죠.
그런데 너무 유명한 얘기죠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요, 또
그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저는요 첫째도 둘째도 세 번째도 조국의 자주독립입니다.
-백범일지 중에서-
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나의 소원의 첫 번째 내용이고요. 그리고 나에서 소원 마지막 장이 뭐냐면 내가 바라는 나라 내가 꿈꾸는 나라입니다. 거기서 유명한 말씀을 하시지요.
내가 바라는 나라는 경제력은 먹고살 수 있을 정도 남한테 손 벌리지 않을 정도의 부력이면 족하고 군사력도 자주 국방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왜냐면, 국방력이 지나치면 이웃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데, 내가 침공을 당해봐서 아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되니 무한한 국방력보다는 지킬 수 있을 정도면 족한다. 그러나 문화의 힘만은 무궁무진한 나라였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문화라는 것은 인과 의, 예를 만드는 그런 학문인데 지금의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세계가 어려움에 처한 이유는 인과 의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래서 인과 의를 만드는 문화만큼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 무한히 뻗어 나갔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상에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다.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백범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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